맷돌 독서모임
2 나는 죽을때 까지 재미있게 살고싶다 (인근후 전 교수님 수필집)
유솔(柔率)
2015. 10. 16. 17:06
Chaper 2 이렇게 나이들지 마라
나이 드는게 두려운 사람에게)
> 무슨 일이든 닥치기 전에 걱정이 많지 막상 일이 벌어진 뒤에는 견딜힘이 생기게 마련이다.
. 추운 겨울에 추워서 어떻하나 걱정할 필요가 없는것이 옷을 몇겹 더 입으면되는것
. 오히려 사소한 일에 주의해라
> 길에서 미끄러지면 병원신세도 져야되고 주변사람을 귀찮게 하게 되어있다.
> 저자도 건강체였지만 지금은 병을 달고 살아
. 히말라야 산을 오를 정도의 체력
. 70 넘어서는 마음만 앞서지 노쇄현상은 급격하게 찾아와
> 나이 들어서 젊어 보이려고 애쓸 필요 전혀없다.
. 나이들면 얼굴에 주름생기고, 근육은 물러지고, 병은 찾아오기 마련이다.
나이들면 약해진다는 생각은 버려라
> 60도 안되어 노인처럼 뒤로 빠진다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다.
. 몸이 예전같지 않아, 기억력이 부쩍 떨어졌어 !
. 늙음을 자청하지 않아도 몸은 늙어 가는데 마음이 먼저 늙어요 !!!
> 옛날 고려장 시대(일본의 영화 나라야마 부시코) 에는 늙은사람이 필요없어
. 먹을게 없는데 생산성 떨어지는 노인은 필요없어
. 요즘 시대에 옛날 고려장 시대 처럼 되는 것은 불필요
> 노인이 되어서도 경로석에 얼씬거리지 않는다
. 경로석은 몸이 불편하거나 약한 사람이 앉는 자리다.
> 노후는 모아놓은 돈으로 살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고, 느리게 흘러간다.
자식인생에 절대 간섭마라
> 조울증 치료가 안되는 어느 교수의 처방이 부모가 돌아가시면 된다.
. 이 교수 사회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자기 아버지(장관, 총장 등의 역임한 유명하신 분)와 비교당하면서 병이 됨
. 부모에 누가 되지 않으려고 온통 신경을 곤두세우다 병이됨
.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별 치료 없이 해결됨
> 부모의 벽은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됨
. 공자왈 젊어서는 부모에 의지하고 늙어서는 자식에게 의지하라 !!!(자식을 존중하고 신뢰하라)
. 맘에 안들어도 자식을 놓아주어야 됨
. 집안의 주도권을 자식에게 주어라
> 최근 롯데가의 이전투구를 보면 노욕이 화를 부르는 것이 보임
> 노년은 자식에게 집안의 모든 흐름과 걱정거리를 맡겨두고 내몸 건사나 잘 하고 삶의 의미를 곱씹고 즐기는 시기여야 된다.
> 이준익 영화감독 이야기
. 아버지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직업이 뭘까요 ? 먹는장사 아닐까 !!
. 대학을 그만두고 한식,일식 식당에서 일하다가 결국은 정육점을 운영하게 됨
>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 억울해 하는 부모님 !!
. 자녀를 위해 희생이 아니라 부모의 당연한 도리다
. 책임을 다한것이지 희생이 아니다.
. 자녀는 분신이 아니라 독립적으로 살아갈 권리가 있는 독립적인 단위다
. 때가 되면 떠나 보내라 ~~~~
나이먹어 돈이 다가 아닌이유
> 저자는 돈에 무감각 혹은 개념부족
. 부친사업이 잘 될때는 어려움을 몰랐고, 결혼후에는 부인이 관리
. 적금 천만원으로 유럽여행을 다녀왔는데 당시 아파트 한채 값을 그냥 여행에 사용
> 사회봉사상 부상으로 천만을 타게 되었는데 이 돈때문에 어떻게 쓸까 잠이 안와요 ~~
. 네팔봉사캠프에 기증하고 나니 홀가분
. 대학교수, 의사로 온갖 혜택을 누렸음에도 상금까지 쓰려고 한 것이 치사했다는 생각이 듬
> 돈 저축보다도 마음저축이 더 필요
. 노년에 돈이 있어야 자식에게 무시 안당하고, 여행도 가고 품위가 유지된다. >> 맞어요
. 돈이 없으면 차 버리고, 여행 안가면 되고, 돈 필요한데 안가면 그만이다.
> 노후에 먹고 노는거에 초점을 맞추면 돈이 필요
. 돈 없이도 살수 있는 의지를 경제력에 포함시키면 얘기가 달라진다.
. 노후자금이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더 좋을수가 있어요 ㅎㅎㅎ
>> 무엇이든 열심히 해볼 각오가 생기기 때문이다.
젊은이를 가르키려 들지 마라
> 노인이 정보의 보고인 시대에는 노인지혜가 중요
. 아프리카에서는 노인 한사람이 죽으면 도서관이 없어 지는 것
. 중국에서는 가족가운데 노인이 한분 계시면 보석이 집에 있는 것
> 첨단 정보화 시대에 노인은 가장 뒤 떨어져 !!
. 민첩함도 떨어지고 행동도 느리고
. 내 경험상 애들이 틀렸어 !! 이건 고집센 어르신으로 소통의 장애가 됨
> 옛날에는 경상도 가려면 문경세재를 거쳐서 가는게 좋아 : 이게 지혜
. 지금은 중부내륙고속도로 타고 가는게 빠르고 네비가 가르쳐 줘요
> 문경세재로 가라고 우기면 곤란 !!
> 젊은이에게 격려가 필요
. 나는 이렇게 살았으니 너도 이렇게 살아라가 아니라
. 스스로 답을 찾도록 스스로의 시대를 살아가야 된다.
> 옛날 고기잡는 방식으로 요즘을 못 따라가
. 과거의 고기잡는 방식이 요즘엔 비생산적일 수가 있어요 !!
. 바다의 생생한 이야기를 해 줄수는 있고
. 거기서 보석같은 노하우를 발견하는 것은 젊은이의 몫
> 왕년에 내가 ~~~~ 자랑하기 바쁜 당신
. 세대가 다른 집단이 모이면 왕년 이야기는 험담거리로 전락
. 오히려 재롱을 떨고 아부를 하라
> 권위나 위엄은 버리고,서운함을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으며
> 자잘한 고통 따위를 내색도 하지 않으면
> 언제나 명령아닌 부탁으로 대화를 풀어가자
오늘을 어제 기분으로 살지 말자
> 존 러스킨은 "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채워지는 것이다."
> 오늘도 또 깨끗한 새 정신으로 하루를 살자
> 내가 오늘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 내인생의 하루를 그것과 바꾸고 있는 것이다.
나이듬에 대처 방식
> 네팔 눔비니 동산은 석가모니가 태어난 성지
. 젊은 사람이 여기 와서는 " 여기가 눔비니야 !! 볼게 아무것도 없네 !!"
. 불교를 조금이라도 이해 한다면
>> 넓은 땅위에 서 있는 사라수 나무는 2600년전 석가모니 탄생을 지켜 보았을 것이다.
>> 보고자 한다면 많은 것을 찾아낼 수 있는 나이가 노인이다.
> 노인은 뭐든지 서둘르지 않아도 되는 나이다.
. 노년은 발견의 시간이다.
. 반추해 보는 시간이다.
. 뭘 말이냐 ?? 혼자서 발견하셔야 됩니다.
>> 그렇지 않으면 발견이 아닙니다.
> 많은 시간과 깊어진 눈과 즐길줄 아는 여유가 노인이다.
배우자가 먼저 죽을까봐 걱정되는 당신에게
> 남편 먼저 안보내기 ! 아내두고 죽기없기 ! 계획을 세워야 한다.
> 아내가 차려주는 따뜻한 밥 먹고 살려거든 아내의 말에 귀 기울이고 애지중지 아껴줘야 된다.
> 늙은 과부로 살기 안살려 거든 남편 기살리고, 건강 챙겨라
며느리가 시아버지 앞에서 반바지 입고…

‘우리들은 각 가정이 고유한 가치관과 종교관을 갖고 간섭 없이 살아가기를 원한다. 서로 같음은 나누면서 다름은 인정하고 존중한다…’.
이근후·이동원 박사 부부의 신 대가족 실험 10년
4남매 가족과 공동주택 동거 … “나, 할아버지 집으로 가출할래”
이근후(77·이화여대 의대 명예교수)·이동원(75·이화여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박사 부부 가정의 ‘가족 헌장’이다. 이들 부부는 2남2녀 가족들과 한 지붕 밑에서 살고 있다. 2002년 서울 구기동에 땅을 사서 집을 짓고 각각 독립해 살고 있던 자녀들을 모두 모았다. 그 후로 꼭 10년. 이 박사 부부를 만나 이들의 ‘신 대가족 실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 박사 부부의 자녀들은 자신들의 신원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자신들의 실명이 공개되는 것도, 사진이 찍히는 것도 거절했다. 이들 가족에게 ‘거절’은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부모가 강요하지 않는 일을 기자가 강요할 수는 없었다. 쉽게 거절하고, 그 거절을 흔쾌히 받아들이는 것. 이들이 10년 동안 대가족 생활을 원만하게 꾸려온 첫째 비결인 듯했다.)
큰며느리가 ‘동거’ 제안

“독립시키고 10년 넘게 지났을 때였어요. 하루는 오더니 전부 다 모여 살면 좋겠다는 거예요. 전 반대했죠. 제가 시어머니를 30년 모시고 살아봐서 알아요. 시어머니가 집에 계시면 딴 방에 있어도 편히 못 눕겠더라고요. 안 된다고 했더니 큰며느리가 그래요. 부모님 두 분 중 한 분이 돌아가시거나 편찮으시면 어차피 자기네가 모셔야 할 텐데, 자녀들이 모두 같이 살면 그 부담을 혼자 지지 않아도 되지 않겠느냐는 거예요. 참 솔직한 이유였죠.”(이동원)
그때가 2000년이었다. 마침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직후여서 싼값에 매물로 나온 땅들이 제법 있었다. 북한산 자락 풍치지구에 660여㎡(200여 평) 땅을 샀다. 땅값은 이근후 박사의 퇴직금으로 충당했다. 집은 자녀들이 각자의 가정형편에 따라 돈을 내 지었다. 낸 돈 액수에 맞춰 각자 집 크기가 결정됐다. 미국 유학에서 갓 돌아와 돈이 없었던 막내아들은 은행에서 한도까지 대출을 받아 돈을 댔다. 2002년 12월 18일. 이 박사 부부의 결혼 41주년 기념일에 준공식을 했고, 다섯 가구가 모여 살기 시작했다.
집은 4층짜리 다세대주택처럼 생겼다. 대문을 열고 건물로 들어가면 층마다 각 세대의 현관문이 따로 있다. 각 가족의 공간은 완전히 분리돼 있다. 집 등기도 각자 했다. 독립성을 최대한 유지하기 위해서다.
“자식 집이라고 연락 없이 불쑥 찾아가진 않아요. 언제라도 맘대로 들락거릴 수 있는 집은 우리집뿐이지.”(이근후)
이 박사 부부는 1층 자신의 집에 최신 컴퓨터 두 대를 설치했다. ‘컴퓨터 게임은 할아버지 집에서만 한다’는 원칙도 정했다. 손주 유인책이었다. 효과는 컸다. 초등학생 손자들이 매일 할머니·할아버지 집으로 게임을 하러 왔다.
“하루는 며느리가 ‘게임을 하루 한 시간씩만 하게 관리해 달라’고 부탁하더군요. 그러겠다고 했는데, 막상 게임을 하는 걸 옆에서 보니 그건 불가능한 일이더라고요.”(이동원)
인터넷 게임이란 게 한 시간쯤 해야 아이템도 모으고, 게임할 상대도 결정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겠더란 것이다. 그때 그만두란 건 게임을 몰라서 하는 소리였다. 중간에 그만둘 수 없다는 걸 이해한 할머니는 엄마 몰래 가끔씩 “실컷 하라”고 허락하는 ‘숨통’이 돼줬다.
게임이 심각한 가족 문제를 불러온 적도 있었다. 중학생이 된 손자가 게임에 점점 빠져들더니 급기야 게임 프로그래머가 되겠다고 나선 것이다. 부모는 게임을 그만두든지, 집을 나가든지 선택하라며 윽박질렀다. 위기 상황이었지만 대가족이란 울타리의 힘을 확인할 기회이기도 했다. 게임을 선택한 손자는 할머니·할아버지 집을 찾아와 “여기서 한 달만 자고 먹고 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그래 좋다. 결심이 서면 와라”고 선선히 대답해 줬다.
실제 가출은 실행되지 않았다. 아래·위층을 오고 가는 사이 아이와 부모의 격한 감정이 서서히 가라앉은 것이다. 1주일 후쯤 “안 오느냐?”고 묻는 할머니에게 아이는 “아무래도 가출하기엔 너무 이른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자란 아이는 어느 날 자연스럽게 게임에서 빠져나왔다. “조부모가 부모와 아이 사이에서 완충작용을 할 수 있다”는 게 가족학자 이동원 박사의 분석이다.
조부모는 아이들이 부모에게 차마 털어놓지 못하는 고민을 들어주는 통로이기도 했다. 손자가 초등학생이었을 때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의 표정이 영 어두웠다. 무슨 일이 있지 싶었다. 쉽사리 사연을 안 밝히는 아이를 달래 할머니가 이유를 알아냈다. 돈을 빼앗고 괴롭히는 친구가 있었던 것이다. 다음날 할머니는 학교로 찾아갔다. 교문 앞에서 기다렸다 그 친구를 만났다. “오늘만 용서한다. 우리 친척 중에 형사가 있는데, 한번만 더 괴롭히면 그 아저씨와 함께 오겠다”고 경고했다. 문제는 바로 해결됐다.
“내가 평생 본 환자, 집에선 만들지 말아야지”
이 박사 부부가 자녀들을 모두 독립시킨 건 1996년이다. 자녀들을 결혼시키며 ‘결혼비용 500만원’이란 원칙을 고수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평균 혼례비용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액수였다. 자녀들을 결혼시킨 뒤 6개월 동안 함께 데리고 산 것도 이들 가족의 이색 프로그램이다. 서로 알고 이해할 시간을 갖자는 의도였다. 새 식구인 며느리와 사위에게 가장 강조한 생활 원칙은 “싫으면 싫다고 바로 이야기하라”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신경정신과 전문의 이근후 박사의 소신은 단호했다.
“내가 평생 만난 사람들이 정신과 환자들이에요. 한결같이 ‘억압’의 괴로움을 호소했죠. ‘노’를 못하게 억압하면 결국 병이 나고 마는 거예요.”(이근후)
큰아들을 결혼시켰을 때다. 마침 집안일을 맡아줬던 도우미 아주머니가 그만뒀다. 시아버지·시어머니·아들·며느리가 하루씩 돌아가며 밥 당번을 하기로 정했다. 그런데 시아버지가 밥을 할 때도 며느리가 나오고, 시어머니가 밥을 할 때도 며느리가 나오고…. 사회통념에서 벗어나기가 그렇게 힘들었다. “제발 들어가라.” “이러면 아무 의미 없다.” 세뇌시키고 세뇌시킨 끝에 시아버지 앞에서도 반바지 입고 누워 있을 수 있는 며느리가 됐다.
‘간섭’도 이근후 박사가 경계하는 요소다.
“여름에 1층인 우리 집 현관문을 열어놓고 있으면 아이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게 보여요. 한 번은 며느리가 저녁에 외출을 하길래 무심결에 ‘어디 가니?’라고 물었죠. 며느리도 ‘○○ 가요’라고 자연스럽게 대답하고 나갔는데, 남편이 한마디 하더라고요. 부담스럽게 그런 걸 왜 묻느냐면서. 며느리 입장에선 간섭인 것처럼 느끼지 않겠느냐는 거예요.”(이동원)
이근후 박사는 “자녀들과 공유하는 부분이 10%만 있어도 충분히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많은 부모가 나머지 90% 영역까지 간섭하려고 해 10%도 공유하지 못하고 산다”는 것이다.
이들은 대가족 예찬론자다.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에서 전망하는 미래의 가족 형태는 대가족(extended family)”(이근후), “60년대 방한한 미국의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도 ‘3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 제도야말로 한국의 가장 큰 자산’이라고 했다”(이동원)는 등 근거도 탄탄하다.
하지만 과거 농경시대의 대가족 제도로 돌아가자는 뜻은 아니다.
“국민소득 50달러 시대의 모델을 2만 달러 시대에 되살리자고 하면 안 되죠. 요즘 젊은 세대에게 ‘부모에게 효도하라’고 해봐요. 거부감 느끼고 다음 말은 들으려고도 안 할걸요. 대신 ‘인간관계가 좋아야 한다’로 말을 바꿔야죠. 대가족 제도도 그렇게 리모델링해서 적용시켜야 해요.”(이근후)
이 박사 가족의 대가족 시스템은 철저히 21세기형이다. 한 집이 6개월씩 당번을 맡아 아파트 관리사무소 역할을 한다. 공용공간의 수리와 청소를 책임지고, 명절과 생일 등 행사 계획을 짜는 일이다. 비용은 가정별로 내는 월회비를 모아 충당한다. 외식한 뒤 누가 돈을 낼까 눈치 볼 일도 없고, 부모님 생신 선물을 어떤 수준으로 맞춰야 하나 고민할 일도 없다. “우리는 손해죠. 선물을 딱 하나만 받으니까.”(웃음)
집안에서 이 박사 부부가 가장 신경 쓰는 일은 조부모 역할이다. 네 명의 손자·손녀와 함께 대화하고, 여행하고, 운동하고, 노는 일이다. 맞벌이 가정에서 부모가 미처 채우지 못하는 물리적·정서적 공간을 할머니·할아버지가 메워주고 있는 것이다.
“며느리나 딸이 ‘오늘 저녁에 바쁘세요?’라고 물어오면 100% 애 좀 봐달라는 뜻이에요. 취소할 수 있는 약속은 모두 취소하고 우선적으로 애를 봐주죠.”(이동원)
이동원 박사로 말하자면 78∼79년 중학생·초등학생인 네 자녀를 시어머니와 남편에게 맡겨둔 채 혼자 미국 하버드대학에 방문 교수(visiting scholar)로 떠났던 사람이다. 당시로선 파격적인 행보였고, “괜찮겠냐”며 수군대는 사람도 많았다.
“내 아이들은 제대로 못 봐줬지만, 손주들은 있는 힘껏 돌봐주고 싶다”는 할머니의 소박한 바람은 ‘조부모의 부모 역할 (grand-parenting)’이란 이론 연구로 이어졌다. 이 박사 부부가 95년 발족한 사단법인 가족아카데미아의 주요 연구 주제가 된 것이다.
DA 300
“아이들의 성장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가 부모에게도 사회적으로 가장 바쁜 시기예요. 부모 혼자 양육 부담을 지기는 너무 버겁죠. 조부모가 그 짐을 덜어주면 저출산 문제도, 노인 소외 문제도 해결되지 않을까요.”(이동원)
[출처: 중앙일보] 며느리가 시아버지 앞에서 반바지 입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