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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관한 에세이 (김승곤 교수)
유솔(柔率)
2015. 5. 8. 20:45

[김승곤 교수의 사진교실] (5) 풍경이라는 이름의 여행

카메라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사진의 기본이 ‘뺄셈’이라는 얘기는 들어보셨을 겁니다. 사진을 처음 시작하면서 가장 저지르기 쉬운 실수는 피사체를 별 생각 없이 화면 한가운데 넣고 찍는 것과 눈앞에 펼쳐진 풍경 전체를 찍어버리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무엇을 보았는가, 그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웠는가를 보여주고 싶어서 서두르는 기분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화면 안에 여러 가지 요소들을 너무 많이 넣어서 찍으면 시선과 관심이 분산돼서 사진을 보는 사람에게 그 풍경의 분위기나 감동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저것 모두 넣으려 하지 말고, 자신이 무엇에 이끌려서 거기에 카메라를 겨눴는지를 확실히 알 수 있도록 프레이밍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을 과감하게 제거하고 난 다음에 마지막까지 화면에 남아 있는 것이 바로 여러분이 찍고 싶었던 것이 될 것입니다.
사진을 ‘뺄셈의 미학’이라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초심자들이 사진을 찍을 때 어려워하는 또 한 가지는 풍경 앞에 서서 무엇을 찍어야 할지, 그것을 어떻게 요리를 해야 하는지 막막하게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그럴 때는 우선 목표가 되는 대상을 정하고, 그 중요한 부분을 ‘3분할의 법칙( rule of thirds)’에 적용시켜서 배치하면 일단은 그럴 듯하게 보이는 사진을 만들 수 있습니다.
사진에서 자주 쓰이는 3분할법이란 화면을 같은 간격의 각각 2개의 수평과 수직의 선으로 나누고, 상하 좌우로 3등분된 선 위나 또는 선이 교차되는 지점에 중요한 요소를 배치하면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안정된 구도가 만들어진다고 하는 것으로, 사진이나 회화, 디자인 같은 시각적인 조형예술에서 화면 구도를 정할 때 오래 전부터 이용되어 온 경험칙 가운데 하나입니다.

멈추지 않는 자연
거리에서 지나치는 사람이나 우연히 만나는 경이로운 광경은 그 순간 찍어 두지 않으면 두 번 다시 찍을 기회가 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연 풍경은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누구나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봄에 못 찍은 벚꽃 사진은 내년 봄에 가서 찍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도 언제나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잊고 있는 것이지요. 살아가면서 관혼상제 같은 크고 작은 일들이 있는 것처럼, 자연에도 사계절처럼 거쳐서 가야 하는 마디 같은 것이 있습니다.
또 같은 계절이라고 해도 지난해와 올해가 다르고, 같은 계절일지라도 그때의 날씨나 시간대나 광선의 성태에 따라서 다른 모습을 연출합니다. 거기에 따라서 보는 사람이 느끼는 감정도 달라질 것이고요. 그러니 엄밀하게 말해서 같은 풍경이란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것이지요.
길고 짧은 차이는 있겠지만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는 정해진 수명이 있습니다. 시간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흘러왔고, 우리의 존재와는 상관없이 앞으로도 영원히 이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도 그 ‘시간’을 눈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서 관찰한다면 느리거나 때로는 눈 깜짝할 사이에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버리는 계절의 풍경을 통해서 시간의 움직임을 눈에 보이는 것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점을 생각하면, 사진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을 기록하는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생명을 품에 안은 자연 풍경은 우리에게 안식을 주고, 예술가들에게는 무한한 영감을 줍니다.
그런 자연이 주는 감동을 사진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풍경 사진가들에게 있어서 더없이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프로도 아마추어도 상관없고, 잘 찍고 못 찍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시간이 만인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은 모든 사진가에게 똑같이 좋은 촬영의 소재가 되어줍니다.

황토와 진달래
한국의 지형은 아메리카나 아프리카 대륙 같은 광활한 대지도 아니고, 유럽의 인간의 접근을 거부하는 듯한 높고 장엄한 산도 없습니다. 하지만 손에 잡힐 듯 가까이에서 적당한 높이로 자리 잡은 산에는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고, 그곳에 우거진 숲과 바위와 계곡물과는 언제라도 친근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응달에 남아 있던 잔설이 봄볕에 녹을 무렵이면 맨 먼저 개나리와 진달래가 피고, 벚꽃 봉오리가 활짝 열리면 그것을 신호로 여기저기 앙상한 나무줄기에서 기다리고 있던 연초록 새싹들이 솟아납니다. 화사한 개나리며 진달래며 목련 꽃들은 한국의 따뜻한 황토색 땅과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요. 봄비가 내리고 나면 녹음이 짙어지고, 높고 푸른 하늘에 흰 구름 뜬 무더운 여름이 찾아옵니다. 장마와 태풍이 지나가면 온 산이 노랗고 빨간 단풍으로 울긋불긋 물드는 청량한 가을. 들녘의 노랗게 여문 곡식과 열매들을 거두고 나면 어느새 다가온 찬바람과 서리에 화려한 가을빛은 사라지고, 매서운 겨울이 다시 온 세상을 흰 눈으로 뒤덮습니다. 이처럼 규칙 바르게 순환하는 자연의 변화를 누릴 수 있는 나라가 지구상에 얼마나 있겠습니까. 풀 한 포기, 구름 한 점,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빛, 어느 한때도 놀라움 없이는 맞을 수 없습니다. 어느 사이에 우리 곁으로 찾아왔다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마는 이 모든 자연의 순간과 광경들이 풍경사진의 대상입니다. 카메라를 들고 집을 나서기만 하면 됩니다.

기억 속의 풍경을 찾아서
사진을 잘 찍고 못 찍는 것은 카메라나 사진 기술이 아니라 자연에 대해서 무엇을 느끼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사진을 찍는 것은 파인더를 들여다보고 있는 인간,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관장하는 뇌=감성’입니다. 겨우내 쌓여 있던 낙엽을 헤집고 얼굴을 내민 여린 새싹을 보며 생명의 환희를 느끼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훌륭한 풍경사진가가 될 수 있습니다.
이미지는 머리에 떠올리는 어떤 정경이나 사물에 대한 인상, 마음속으로 그리는 상을 말합니다.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을 자라게 해준 아늑한 농촌 풍경일 수도 있고, 아니면 전쟁의 폐허나 지긋지긋한 가난의 기억일 수도 있습니다. 개인이건 집단이건, 우리는 누구나 시간이 지나도 기억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 그런 풍경들을 가슴속에 지니고 살아갑니다. 안개가 자욱이 내려앉은 호수, 바닷가에서 석양을 바라볼 때나 낯선 이국의 여행지에서, 초가집 굴뚝에서 피어나는 연기를 보며 문득 과거의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풍경, 그리움과 감미로운 슬픔 같은 감상적인 정서를 동반하는 그런 풍경을 ‘원초적인 풍경(原風景)’이라고 부릅니다.
도시에서 태어나서 자란 아이들에게는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뒤덮인 아파트단지나 손바닥만 한 공원에 심어진 나무 같은 것이 ‘원풍경’이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다행한 일로 우리는 아직은 오래전부터 민족적인 정서로 이어져 내려온 그런 자연의 풍경을 찾아서 카메라를 들고 나갈 수 있습니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6호(2015년 05월) 기사입니다]